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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교육-역사속청렴이야기14

부서
도로과
작성자
등록일
2009-03-19
조회수
3888
첨부파일

이종성과 유척기 ‘집안 원수’-‘여야(당파)’ 초월한 국익 합

이종성(李宗城)은 대신(大臣)이 현직을 물러나면 사흘 안에 도성(서울)을 떠나는 것이 관례였으나, 어쩐지 노들강변에서 낚싯대만 드리우고 있다가 궁중 후궁의 가짜 임신 사건을 해결하고는 향리인 장단 오천(梧川)에서 유유자적하던 어느 날이었다.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게 한 뒤 “오늘은 유척기(兪拓基)대감이 응당 찾아오리라” 했다. 자제들이 “그는 우리집안과는 대대로 원한이 있는 사이인데 어떻게 오겠습니까?” 라며 의아해하자, “아니니라, ‘나랏일(국사)’을 위해서는 사사로운 세혐(世嫌)은 상관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오고야 말걸…” 이종성이 알아듣게 타이르고 난 다음이었다. "물렀거라"하는 벽제(辟除)소리가 동구 밖에서 들리더니 과연 유척기가 당도했다.

이종성은 방 가운데 병풍을 막아 치고 서로 얼굴을 대하지 않고, “대감께서 무슨 긴한 일이 있기에 누추한 곳까지 오셨소?” 라고 묻자, 유척기가 대답했다. “청나라에서 곡해하는 일이 생겨서 그 사실을 밝혀 변명하는 ‘변무사(辨誣使)’로 연경(北京)으로 가는 길이온데, 아직도 명나라를 섬기는 마음을 못 버린다고 힐문할 터인데 무어라고 타일러 변명해야 그네들 귀가 솔깃해질지 그 방책이 아득합니다.”이종성이 조금 뜸을 들이다 한 가지 비유로 청나라 건륭제(乾隆帝)를 설득해보라고 했다.

<내가 늘 제삿밥을 좋아했는데, 이웃에 ‘두 번 시집온(재가)’ 아낙이 있어 정성껏 제삿밥 음복상을 차려와 고맙게 여겼다오. 한번은 음식은 차리지 않고, 울어 눈이 부어서 온 그 여인을 보고 연유를 물었더니 한숨 쉬며 들려준 울먹인 하소연이 문득 생각납니다. “마침 ‘전남편’의 제삿날이라 정성을 다하여 제수를 차렸더니, ‘지금남편’이 시기하여 꾸 짖는데, 뭐라고 말해야 그가 알아듣겠습니까.” 하기에 내가 이렇게 하라고 일러주었다오. -당신이 내 전남편의 제사를 지내려는 것을 보고 못마땅하게 여기는데, 그 말은 틀렸소. 만약 아니할 말로 당신이 불행해져 내가 가난해 먹고 살 기위해 또 개가를 했다 치면, 당신 제사를 이와 같이 지낸다면 그르다고 하겠소.  이 말에 그의 지금 남편이 고개를 끄덕여 제사를 잘 지내고 떡 벌어지게 음복상을 내게 차려 와서 맛있게 먹은 적이 있었소.>

이 비유를 들은 유척기는 “명심하여 가르침대로 ‘임금의 명령(군명)’을 더럽히지 않도록 사명을 다하겠습니다.”라며 일어서자, 이종성이 금관조복(金冠朝服) 한 벌을 내주며, “내가 이 옷을 드리는 뜻도 유의하시오” 했다. ‘원임(原任:전임) 대신’과 ‘시임(時任:현임) 대신’은 얼굴은 대하지 않은 병풍대화였다.

‘앙숙 반대당’의 「슬기로운 가르침」 세상에 드러낸 ‘큰 아량’

정승 유척기가 연경에 도착, 금관조복 차림으로 건륭제를 알현하니, 대뜸 노기 띠어 물었다.“너희 나라가 대보단(大報壇)을 지어 명나라 황제에게 제사를 지내고, 공용복장도 명나라 제도만 숭상하니, 그대의 나라가 상기도 명나라 조정을 잊지 못하니 이런 도리가 있느냐.” 유척기가 이 불호령을 듣고, 이종성이 일러준 대로 과부의 개가 일에 비유하여 풍자하는 말로 아뢰고, 금관조복을 가리키며 다시 엎디어 말을 계속했다. “명나라 공복(公服) 제도는 이같이 옛날 근본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폐지하지 못하옵니다.” 청나라 임금 건륭제는 유척기가 입은 조복이 화려하고 그 차림이 정제(整齊)한데다, 그 절그렁절그렁 하는 패옥(佩玉) 소리가 은은한 것을 알고, 얼굴빛을 풀고 말을 부드럽게 했다. “그대의 나라가 일찍이 ‘예의지국’이라 일컫더니 옛 임금을 잊지 않으니 그 뜻이 가상할뿐더러, 의관문물이 예로부터 ‘소중화’라 칭찬이 자자하더니 그 복장을 보니 과연 거짓말이 아니구나.” 청나라 황제는 유척기에게 특별히 천리마 한필을 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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