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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수도사업소]물이야기(생수업계의시조 봉이 김선당)

부서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9-05-13
조회수
4471

생수업계의 시조, 봉이 김선달


조선시대 봉이 김선달은 평양 대동강에서 물을 긷는 물장수를 보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 올랐습니다. 그는 물장수들을 불러 모아 대접을 잘 하고는 “내가 이 엽전을 줄 테니 내일부터 물을 길 때마다 두 닢 중 한 닢은 나에게 내고 나머지 한 닢은 가져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물장수들은 어차피 공짜로 길어가는 물인데 이것이 왠 횡재냐 하고 좋아하였습니다.


다음날부터 김선달이 강가에 앉아 있으니 물장수들이 물을 길 때마다 한 ?F씩 엽전을 내고 가니, 저녁이 되자 돈이 그득하게 모였습니다. 이광경을 본 욕심많은 한양의 상인들은 놀라서 “저 한없는 대동강물을 팔 수 있다니, 이를 사면 자손대대로 큰 돈을 벌겠다” 하고 김선달에게 이를 팔도록 흥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선달은 시침을 떼고 “이 강은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것이라 못 팔겠소” 하니 상인들은 더욱 욕심을 내어 결국 4,000냥이란 큰 돈을 내고 대동강물을 사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김선달은 그날 밤 돈을 갖고 도망을 가고, 욕심 많은 상인들은 물장수들한테 망신만 당했지요. 김선달은 분명 희대의 사기꾼이지만 아마 최초의 생수업자라고도 하겠습니다.


종로에는 물시계가 있었어요


해시계와는 별도로 이집트에서는 3400년 전에 이미 물시계를 사용했다고 하며, 고대 그리스에서도 클렙시드라(Clepsydra)라는 물시계를 이용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사기에 신라 성덕왕 17년(718)에 물시계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해시계는 맑게 개인날에만 쓸 수 있었지만, 물시계는 흐린 날이나 밤에도 사용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하였습니다.


조선시대 태조7년(1398)에는 물시계를 표준시계로 삼아 종루 안에 물시계를 설치하고 대종을 울려 표준시간을 알려주었습니다. 즉, 종루와 물시계가 있는 거리가 종로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도성과 주요 도시에만 물시계를 설치했으나 멀리 있거나 이동 중일 때는 시간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종19년(1437)에 만든 행루(行漏)는 휴대용 물시계로 여행때나 군대에서 요긴하게 사용하였습니다.



다음편에는 ‘우리나라도 물이 부족한가요?‘지금은 물전쟁 시대, 블루골드(Blue Gold) 시대’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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