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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호국인물 어재연(魚在淵)장군

부서
자양3동
작성자
김현진
수정일
2010-04-22
조회수
3579
첨부파일


 


 


 


 


 



 


전쟁기념관 (관장 박장규)은 병인양요과 신미양요 당시 강화도 수비에 큰 공을 세운 조선 후기의 명장, 어재연 장군을 2010년 5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어재연 장군은 1823년(순조 23)에 태어나 19세 되던 1841년(헌종 7) 무과에 급제하여 광양현감, 해주진영 병마절도사, 장단부사 등을 역임했다.


 


1866년(고종 3) 종2품 공충도(충청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는데 그해 프랑스 로즈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하자(병인양요) 병사를 이끌고 광성진(廣城鎭)을 방어했다. 이후 회령부사가 되어 북쪽 변경지방의 도적들을 토벌하고 치안을 다스려 장시(場市)를 개설하는 등 변경무역을 활성화했으며 별포대(別砲隊)를 설치해 국경 수비를 튼튼히 했다.


 


1871년(고종 8)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로저스 제독(Rogers 1812~1882)이 이끄는 미국 아시아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 신미양요가 발생하자 진무중군(鎭撫中軍)에 임명되어 6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광성보(廣城堡)에 급파되었다. 6월 10일 강화도 상륙작전을 전개하여 초지진에 이어 이튿날 덕진진을 함락한 미군은 광성보에 총공격을 시작하여 해상에서는 함포사격, 지상에서는 야포사격으로 수륙 양면으로 초토화작전을 전개했다. 이에 어재연 장군은 수자기(帥字旗)를 게양한 후, 임전무퇴의 결의로 침공해오는 미군에 응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고군분투했다. 백병전의 단계에 이르자 직접 장검을 빼들고 군사들과 함께 적을 무찔렀고 대포알 10여개를 양손에 쥐고 적군에 던지며 끝까지 항전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장(忠壯).


 


당시 각종 화기와 서적 등과 함께 약탈당했던 장군의 수자기는 136년만인 2007년 한국에 돌아와 현재 전쟁기념관에 복제본이 전시되고 있다.


2010년 5월 6일 (목14:00)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종중과 유관단체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어재연 장군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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