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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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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정의 은거와 풍류

1420(세종 21) ~ 1488(성종 19) 조선 초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달성. 자는 강중(剛中), 초자는 자원(子元),  호는 사가정(四佳亭)이다.
서거정(徐居政)은 그 학문이 매우 넓어서 천문, 지리, 의약, 점복, 성명, 풍수에 이르기까지 관통하였으며 문장에 일가를 이루고 특히 시에 능하여 명나라에서도 이름이 알려졌었다. 그는 70여년의 생애동안 거의 관직에 나아가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우리나라 한문학의 독자성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그는 이러한 관직 생활을 하던 도중 공무로든 사적인 관계로든 자주 광나루를 오가게 되었다.

당시 광나루가 갖고 있는 풍경이란 그가 항상 꿈꾸던 강호(江湖)의 세계로 여겨졌다. 그 것은 그가 해질녘에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서 본 강 풍경에 대한 소감을 읊은 시에서 알 수 있다.

「날 저물게 광나루에 와서 말 세우고 배를 부른다./ 물은 푸른 벼랑 아래로 감돌고 흰 갈매기 앞을 지나누나/강가 갈밭에는 흰 눈이 날리고, 사당 앞 잣나무에 맑은 연기가 흔들린다./ 해질녘 배 위에 앉으니 시심(詩心)이 가볍게 떠오르누나...」

서거정이렇게 틈을 내서 광나루의 한적한 풍경을 시로 읊으면서 그는 당시 아차산에 있던 백중사(伯仲寺)에 찾아가 노닐며 시를 짓기도 하였다. 또한 그 중 광나루를 건너면서 저 멀리 이는 범굴사를 바라보며 지은 시에서는 부근의 아름다운 정경을 잘 그리고 있다.

절간이 어디인가 저 멀리 흰구름 속에 보인다./ 산 그림자 지는 곳에 객은 말을 타고 가고 가을소리 들려오는 곳에 중이 종을 두드린다./ 단풍숲은 붉기만 하고 강물은 푸르게도 흐른다./ 언덕 저 쪽에 촌가 조용하니 돌아갈 마음이 죽처럼 진하다.

자주 광진을 지나며 지날 때마다 이렇게 주위의 산수풍경을 사랑하고, 은퇴하여 한적한 생활을 생각하던 서거정은 만년에 결국 그의 숙원을 이루어 이 광나루 마을 조용한 곳에 집을 마련하고 농로(農老) 어옹(漁翁)들과 이웃하여 세정(世情)을 멀리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광릉촌야시(廣陵村野詩)로 그의 편안하고 한가로운 심정을 이렇게 읊었다.

광릉의 가을 물색이 장강에 잇달았는데 / 문에는 띠풀 가리우고 늙은 나무가 두 그루 서 있다. / 뱃사람 다투어가며 그물에 큰고기 들었다 자랑하고 / 마을 아이들 와서 항아리 가득 술 익었다고 알린다. / 강호만리(江湖萬里) 넓은 하늘에 아득히 새가 날아가고, / 울타리가 어스름에 개가 홀로 짖는다. / 흙 방바닥 등상(藤床)자리에 베개 기대고 누우니 / 한밤중 떠오르는 달이 창가로 비쳐 든다.

이렇게 그는 만년에 늙은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던 광나루 부근의 쌍수정(雙樹亭)에 자리잡고 강호 생활의 낭만과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강호생활을 하면서 유유자적함을 즐기기도 했던 그는 성종 18년(1487년) 68세의 나이로 왕세자인 연산군을 위해「논어(論語)」를 강하였지만 이듬해인 1488년 69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로 광나루의 아름다움과 정취에 취하여 홀로 오가던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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